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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ame of their lives
얼마 전, BBC에서 1966년 영국 월드컵 축구 대회에 참가했던 북한 축구팀에 대한 다큐멘타리를 방영했다. 지난 월드컵 때, 붉은 악마가 "Again 1966"이라는 문구를 선보인 이후에야,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던 줄 알았던 나는 흥미롭게 TV를 지켜봤다.
당시에는 중동, 오세아니아, 아시아를 합해 단 한 장의 본선 티켓이 주어졌기 때문에 북한은 마지막으로 호주와 지역 예선을 치러야 했다. 경기는 제 3국인 캄보디아에서 2회 열렸는데, 체력과 기술의 열세를 극복한 북한이 큰 점수 차로 호주를 따돌리고 본선에 오른다. 북한의 본선 행은 당시까지 세계 축구계를 양분하고 있던 유럽과 남미 국가들 외에 유색 인종이 참가하게 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김일성은 선수들이 영국으로 떠나기 전 이 점을 높이 샀다고 한다.
북한은 소련, 칠레, 이태리와 한 조가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거의 "죽음의 조"였을 것이다. 예선 경기는 공업 도시인 미들스버로우에서 열렸는데, 영국인들은 6.25 전쟁 때 적이었던 북한의 축구팀을 처음에는 경계 했지만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북한은 소련과 첫 경기를 가졌는데 0 : 3 으로 진다. 화면을 보니 소련 선수들은 북한 선수들 보다 키가 거의 한 뼘 이상이나 크고 매우 거칠게 경기를 해서 북한 선수들이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다음 경기에 대비하면서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주체 사상"을 공부하는데, 과연 그들다운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 째 경기는 칠레와 하게 되었는데 여전히 힘든 경기를 했고 점수도 0 : 1로 뒤진 채 종료를 얼마 안 남기고 있었다. 그런데, 5분을 남기고 극적인 동점 골이 터지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결과는 1 : 1로 끝났지만 관중들은 드라마틱한 경기에 열광했고 미들스버로우 시민들은 북한 팀에게 더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게 된다.
프로그램은 당시의 기록 영상과 현재의 인터뷰, 그리고 90년 대 후반에서 2000년 대 초에 촬영된 것으로 보여지는 평양 시가지, 북한 어린이들의 연주 모습을 섞어가며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매스게임 장면이었는데 한국에서 TV를 통해 잠깐씩 보았던 것이라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걸 하는데 약 2만 명이 동원 된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마지막 상대는 운명의 이태리. 그 때 이미 월드컵 2회 우승을 달성한 강팀이었던 이태리는 칠레에 이겼지만 소련에 져서 1승 1패. 나머지 경기를 반드시 이겨야만 8강에(당시에는 16강이 아닌 8강)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이태리를 1 : 0 으로 격침시킨다. 그 결과로 이태리 선수들은 귀국 시 로마 공항에서 토마토와 계란 세례를 받았다.
북한은 포르투갈과 8강 경기를 하기 위해 리버풀로 향한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북한은 그 이상의 성적을 내리라고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인지 숙소를 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 이태리가 이겼다면 머물기로 되어 있던 숙소와 연락이 닿는다. 카톨릭 분위기가 물씬 나는 그 곳에서 선수들은 밤에 불빛에 비친 십자가를 보고 놀라거나 두려운 생각을 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드디어 경기 시작. 북한은 전반에 3 : 0 으로 앞선다. 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였고 북한이 예선 경기를 했던 미들스버로우에서 부터 원정 응원을 온 사람들은 북한의 인공기를 흔들며 열띤 응원을 한다.
그러나, 포르투갈엔 검은 표범 "에우제비오"가 있었다. 2002년 월드컵 때, 한 방송국 초청으로 내한한 적이 있던 그의 젊은 모습은 화면 속에서 매우 다부져 보였다. 당시 북한 선수들의 인터뷰 내용을 빌리자면 그들이 0 : 3 으로 뒤지던 때 에우제비오는 잘 하자며 동료들에게 호소했다고 한다. 결국, 에우제비오가 골을 넣으면서 경기는 3 : 5로 북한이 지고 만다.
아직 생존해 있는 대부분의 북한 선수들은 한결같이 김일성의 위대함과 은혜에 여전히 눈시울을 붉힌다. 그러한 장면은 아무리 보고 또 보고 생각을 해도 절대 이해되지 않지만 그들에게는 여전히 당연한 일 인 것 같았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데 민족보다 위대한 사상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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