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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기의 나라

 

처음 런던에 와서 며칠간은 아침에 일어나서 영 개운하지가 않았다. 머리도 무겁고 근육도 뭉쳐 있는 것 같고. 자기 전에 미리 스트레칭을 하고 샤워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시차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침대 생활을 처음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요인을 분석해 보았지만 어느 하나 시원스런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심지어는 집 밑으로 수맥이 지나가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한 두 달이 훨씬 지나도록 그 해답은 풀리지 않았는데 그긴 만나 본 몇몇 한국 남자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을 알게 되었는데 런던에서 만난 적지 않은 한국 여성들이 한국에 있을 때 보다 살이 많이 찐다는 것이었다. 주변의 여성들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에서 예외가 없을 정도였다. 많게는 10kg에서 4, 5kg정도는 보통인 듯 했다. 그런데, 런던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여성들은 다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간다고 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식생활의 변화가 어느 정도는 있다고 해도 물리적인 공간의 차이만으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러던 중, 한 여자의 불만 섞인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녀는 런던에 게이가 너무 많다며 심심찮게 불평했다. 실제로 런던은 암스테르담과 더불어 게이들의 해방구나 다름없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동성 간의 결혼을 인정해 주지는 않지만 많은 동성연애자들이 런던에 둥지를 틀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영국 런던에 게이들이 많은 것일까? 나름 분석을 해 보았다. 아니 추리를 해 보았다.

첫 째, 영국은 사방팔방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는 섬이다. 물은 음기를 상징한다. 이런 섬나라들은 내륙이나 반도에 위치한 나라들에 비해 음기가 센 편이다. 영국을 비롯하여 호주, 필리핀, 일본 등. 그런데, 각 나라 별로 현상은 다르게 나타난다. 영국은 섬나라이면서 산업 혁명을 거치는 동안 여성의 사회 진출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특히 1,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가정의 생계와 국가 산업에 이바지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전시에 운전병으로 복부 할 정도였다. 전사하고 불구가 된 수많은 남자들을 대체하면서 여권은 신장되었다.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권익에 눈 뜨게 되고 사회는 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영국은 지리적으로도 음기가 센 섬나라이면서 사회 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했기 때문에 여권이 강하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여왕과 여성 총리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영국 남자들은 수줍어하거나 낯을 가리는 면이 많은데 비해 여자들은 걸음걸이도 빠르고 거칠 것이 없으며 행동거지는 대담할 정도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모든 섬나라가 영국과 같은 현상을 보이지는 않는다. 필리핀의 경우는 음기가 남녀의 성비에 영향을 미친다. 필리핀의 남 : 여 비율은 거의 1 : 3 에 육박하며,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 여성이다. 필리핀출장 중에 만난 한 버스 기사는 마닐라와 지방 2곳에 각각 1명씩 총 3명의 부인이 있다고 했다. 특별히 그의 경제력 때문만은 아닐지라도 농담 반 진담 반 같은 대답은 성비의 심각한 불균형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일본의 경우는 앞의 두 나라와 비교하면 음기가 세다는 특별한 점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다른 곳에 그 해답이 있다. 일본 바로 옆을 보면 대륙에서 길게 뻗어 나온 심상치 않은 반도 하나가 눈에 보인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사방에 가득한 일본의 음기는 가장 강력한 양기의 나라 한국에 의해 중화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 일본은 영국이나 필리핀처럼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현상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을 짓누르는 거대한 양기를 약화시킬 필요는 있었다. 그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일본에게는 위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제 침략시 여기저기에 쇠말뚝을 박고 중앙청과 기묘한 모양의 서울 시청 건물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추리를 거듭하다보니 관심은 태국에까지 다달았다. 지리적으로 섬도 아니고 한국과 비슷한 반도인데 여기는 특히 트랜스 젠더가 많은 곳이다. 수많은 남자들이 여성이 되고 싶어 하는 특별한 곳이다.

남자들에게 왜 그런 성향이 강하게 나타날까. 이런저런 말들이 있다. 예전부터 남자들은 힘들게 바깥일을 해야 하고 여자들은 집안일을 하는 게 전통이다. 태국 남자들은 강한 태양 아래서 검게 타도록 농사를 지어야 했다. 반면, 여자들은 집안일을 도와야 했는데 집안에서 귀여움을 받으며 자란 딸 들은 남자 아이들로부터 시기와 질시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남자들은 비록 피부가 검어져 더 이상 하얘질 수는 없었지만 행동은 여자 형제들을 모방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몸은 남자인데, 정신과 행동은 여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받아들일 수 없어하지만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모두 서로를 인정 한다고 한다. 이런 배경으로 태국에는 게이 및 트랜스 젠더들이 많은데 이들은 국가나 가족의 수치가 아니라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역군들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에서 기인한다. 태국은 지리적으로 보면 동남아의 십자로다. 평화 시엔 교역이 넘쳐나지만 그 평화가 깨지면 전쟁의 소용돌이에 바로 휩싸이는 곳이다. 전쟁이 나면 어린이, 노약자, 여자들이 가장 큰 희생을 치른다. 하지만, 어린 사내아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막대기를 들 수 만 있어도 전쟁터의 화살받이로 끌려 나가야만 하는 운명은 어쩔 수 없다. 부모들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들을 전쟁터로 보내고 싶지 않다. 반면, 딸들은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아들 대신 딸 하나 전쟁터로 대신 보내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치마를 입혔다. 언제 어디서 또 전쟁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치마를 입히고 머리카락을 곱게 땋아 아들을 딸로 기르는 것을 좋아할 부모가 어디 있을까마는 어렵게 낳은 아들을 살리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사내는 여자 형제들과 어울리며 점점 여자가 되어 간다. 전쟁이 끝난 지 오래되고 태평성대가 계속된다 해도 부모는 아들의 치마를 벗길 수가 없다. 그렇게 아들은 계속 딸로 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태국에 여성스런 남자들과 트랜스 젠더가 많은 이유라고 한다. 가슴으로는 그들의 처지를 백번 천번 이해한다. 그러나, 머리는 아직 섬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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